우리 왕손(王孫)李氏의 本貫(本)은 全州이다.
전주부(全州府)는 본래 백제(百濟)의 완산(完山)땅이었는데 신라진흥왕(新羅眞興王)때에 완산주(完山州)로 했다가 경덕왕(景德王)때에는 전주라고 고치고 아홉고을을 두었으며, 효공왕(孝恭王)때에 견훤(甄萱)이 이곳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後百濟)라 하였으나 고려태조(高麗太祖)19년에 후백제의 신검을 쳐서 평정한 후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라
일컬었으며 23년에는 다시 전주라 하였다. 성종(成宗) 12년(서기993)년에 그 고을을 맡은 벼슬 이름을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安撫使)라 하였고, 14년에는 12고을을 두어 군의 명칭을 순의군(順義軍)이라하고 전주는 강남도(江南道)에 예속하였다. 현종(顯宗)때에는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라는 이름으로 고을의 지위를 올렸다가 그후 또 전주목(全州牧)이라는 벼슬을 고치고 공민왕(恭愍王) 4년(서기1355)에는 부곡현(部曲縣)으로 했다가 5년 후에는 다시 완산부(完山府)로 고쳤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임금에 오르시니 임금의 조상(祖上)이 나신 고장이하 하여 그해(서기1392년)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격을 올렸으며 태종(太宗) 3년(서기1403)에 전주부(全州府)로 다시 고쳤다. 흉희(隆熙) 4년(서기1910) 국치이후 왜정시 전주부(全州府)라 하였고 1945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전주시로 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 시조(始祖) 어른의 휘(諱)는 한(翰)이시며 호(號)는 견성(甄城)이시니 신라문성왕(新羅文聖王)때 사공(司空: 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벼슬) 벼슬을 하였으며 이 어른의 배위(配位)는 경주김씨(慶州金氏)시니 신라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의 십세손(十世孫)인 군이(軍伊) 벼슬을 한 은의(殷義)의 따님이시다.
영조(英祖) 47년(서기1771)10월 16일에 중국 주나라 주공(周公)이 선조에게 제사를 받드는 예법을 좇아 영조께서 시조 양위분의 위패를 친필로 쓰시어 신주(神主)를 조성하자 경희궁 자정전(慶熙宮 資正殿)에 모시고 제향을 받들다가 그해 전주(전주시 풍남동)에 사당 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이곳에 옮겨 모셨다. 고종황제(高宗皇帝)께서 광무(光武) 3년(서기1899)
4월 8일 묘소(全州 乾止山 전주 건지산) 을좌(乙坐) 앞에다 제단을 세워 조경단(肇慶壇)이라 이름하여 제향을 받들게 하였다.
<출처 : 선계인성군파속보>

(조경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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